창세기 스케치 - 제 1 장

제1장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

생명 성장의 체험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일생의 체험도 창세기 1장과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 사실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우리 일생의 체험이 있고, 우리 일생의 체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얻는 것’과 ‘사람을 통하여 땅을 정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고 갖기 원하시는 것은 ‘땅’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봉사 가운데 이 두 가지에 별로 유의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대개 교회를 인수하고,추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의 뜻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어울리려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도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도 땅이어야 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당신, 사람인 당신이란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구속(救贖)을 주셨고,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를 날마다 은혜를 체험케 하시며, 또한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흘러나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은사 또는 기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참으로 미천한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교만케 할 수 있고 ,비굴케 할 수도 있으며, 우리를 자만케 할 수도 있고 ,실망케 할 수도 있으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제보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게 한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 안에 온전한 삶을 알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을 빌어 주님의 기쁨을 구하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어떤 것을 중히 여기고, 어떤 것을 가벼이 여기게 할 것이다. (고전4: 6)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앙망하며, 그분께 찬양을 올리자. [오! 주님! 당신께서 소중히 하시는 것은 '나' 라는 [사람]이며, 나의 은사와 재능을 개의치 않으시고, 나의 승리와 실패도 개의치 않으시며, 오로지 ‘나’ 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얻으셨는가?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다섯 중점을 볼 수 있다. 이 다섯 중점은 생명체험의 기초이기도 하다.

생명 성장의 기초

1. 태초

[태초에 하나님이...창조하시니라] (창1: 1).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의 생명의 체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 태초가 없다면 생명의 성장은 없다. 생명에의 태초가 없다면 설령 밖에 많은 봉사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 예를 들어, 구원을 받고 거듭난 형제자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체험 가운데에 태초가 없으면 성장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날 집회 또는 환경을 통해 기이하게도 뭔가가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므로 그 때서야  비로소 주님과 교회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事物)의 색깔도 변한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태초]이다. 그들 안에서 뭔가가 [시작]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이 변한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생명 성장의 첫걸음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행하실 첫 번째 기초이다.

2, 하나님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히브리어 Elohim은 전능하시고 ,지고(至高)의 경배의 대상자이시다. 우리가 태초를 만졌을 때 우리는 무엇이 믿음인가를 잘 몰랐지만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지고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마음속으로부터 말로 다 표현 할수 없는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설령 어느 날 우리가 연약하고, 약간의 믿음도 없는 것처럼 될 때에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확신이 있을 것이다. 전능하신 지고의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책임지실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우리 일생의 길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함도 책임지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성장을 해야 하고 ,진실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는 결코 우리 자신이 정함으로써 유효하지 않고, 또한 우리가 많은 봉사를 하였다고 해서 유효한 것도 아니다.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언가가 우리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 우리는 그분에게 해명과 변론과 항쟁을 해보지만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얻은바 되었다. 또한 우리에게 끊임없는 새로운 시작을 주어, 우리가 하늘에 속한 여정을 걷는 데 적극적으로 인도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확신을 볼 수 있게 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누구도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할렐루야]를 외친 사람은 모두가 주님 앞에 설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우리의 일생 생활가운데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우리를 약함과 실패로 몰아가지만, 그러나 그 무언가가 우리로  하여금 아주 확신 있게 한다.  이 확신은 우리의 승리, 실패, 기쁨 및 침체와는 상관없다.  이 확신은 내적인 것으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며 ,주님을 떠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봉사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의 나타남이 어느 정도에 있는가도 별개의 문제이다. 유일하게 우리로 하여금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이외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살고 계신그분은 전능하시고, 지고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 창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태초를 있게 하시고, 우리에게 확신을 주셨을 때, 기묘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가 우리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은사는 우리가 전에 전혀 없었던 것이다. 혹 우리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 이거나 무지한자 일지 몰라도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을 위하여 말을 하고,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다. (창1: 1 ) 하나님의 창조가 우리 안에 나타내심은 우리를 태초의 신선함과 하나님의 주권 안으로 이끌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더 많이 나타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이....운행하시니라] (창1: 2 )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하루하루 생명 성장의 기초이시다. 우리가 때로는 창세기 1장 2절의 [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황 속에 빠져, 황폐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 방면으로 운행하여 우리를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가라사대 ......있으라  하시매...] ( 창1: 3 )

하나님의 영이 운행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도 역사(役事) 하신다. 1장 3절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도 역사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우리 가운데서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체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생명은 더욱 성장한다.

우리는 생명 성장의 체험 가운데서 이 다섯 중점들을 영원히 벗어 날 수가 없다.   체험 중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또 다른 여섯 단계가 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더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1: 3 – 4).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역사하시기 위하여 제일 먼저 우리에게 주신 것은 빛이다. 우리의 생명 성장은 이 빛에 근거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빛-죄악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제거한다.

빛- 하늘의 속한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한다.

빛-우리의 속생명으로 하여금 한 단계 한 단계 성장을 이루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일평생의 생명성장은 바로 이 빛 비춤에 근거한 것이지, 결코 사람의 교훈에 근거하지 않는다. 생명 성장의 체험에 있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처리가 아닌 빛 비춤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더욱 진지하게 되고, 빛이 강할수록 그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더욱 쓰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매우 해방되었다 하더라도 이 해방은 반드시 빛 비춤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흔히 부르짖음 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우리가 영안에 거하면 거할수록 빛 비춤을 더 받게 되고, 빛 비춤을 더 받게 되면 더욱 변화 될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이전에 행하지 못했던 것을 행하게 하며, 또한 우리가 이전에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한다. 영의운행의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는 새로운 체험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영의 운행이 첫째로 우리에게 빛을 가져 온다. 우리의 생명 성장의 많고 적음은 실로 우리에게 빛 비춤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 옛사람인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은 세워 일으킴이 아니라 파쇄와 철거하는 것인데, 파쇄와 철거의 근거는 바로 빛인 것이다. 빛은 사망을 대적한다. 우리는 본래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인고로 필요한 것은 세워 일으킴이 아니라 파쇄와 철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결코 설교를 잘하고, 온유와 겸손을 겸비하여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천연적인 우리를 무너뜨리고 깨뜨리고 파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우리를 파쇄하실 것인가?  첫째로는 그분의 빛을 통하여 행하신다. 그런즉 빛 비춤의 체험은 우리의 일생 동안 우리로부터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하나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빛 비춤이 더욱 필요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당신이 필요로 하는 빛이 더 많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엎드릴수록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빛 비춤이 더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한 동안 교회생활을 한 후, 사람들이 당신에게 얻은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오면 당신은 [나는 로마서, 에베소서....을 얻었다 ]라고말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나는 영을 얻었고, 빛도 얻었으며, 나는 처음 교회생활에 있어서 주님과 교회에 대한느낌과 시각과 태도가 이러했는데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경지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빛 비추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도다. 나는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도다. 나의 영의 나타남은 강하고 밝으며, 나의 영은 하나님을 흘러나오게 한다.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가치가 높다.  우리의  처음 상황은 죽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빛을 통하여 우리를 죽음가운데서 살려내셨다. 에베소서 5장 14절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빛 비춤이 옴으로 사람들을 소생케 한다는 것이다.

위와 아래를 나눔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 (창1: 6 – 8 ).

하나님의 창조의 둘째 날에 들어서서, 우리는 하늘의 속한 경지(境地)를 만질 수 있다. 이 경지는 우리일생의 체험 가운데서 끊임없이 갱신(更新)할 것이다. 당신이 구원 받고 , 1년 또는 2년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 합당한 성장이 있은 후, 이전 하늘의 속한 사물을 뒤돌아 볼 때 ,당시 당신이 갖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구원의 즐거움과 죄 사함의 평안 뿐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성장한 자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 다를 수 있고, 보는 것이 더 높을 수 있다. 당신은 한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하늘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의 체험 가운데서 이러한 새로운 하늘이 있는 것을 끊임없이 발견할 것이다. 당신에게 위와 아래의 나눔도 날이 갈수록 더욱 확연 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체험으로 당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만일 주님에 대한 당신의 체험이 작년과 오늘이 같다고 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설령 당신이 [그리스도는 생명이 되심], [새사람], [그리스도 얼굴의 빛] 등의 내용을 알고 ,또한 그러한 내용까지도 말할 수 있을 지라도 만일 주님에 대해 새로운 빛과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인식이 없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긍휼이 필요하며 ,또한 주님께 이렇게 아뢰어야 할 것이다. [주님! 나의하늘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기를 원하며, 내가 알아야 할 하늘에 속한 일들이 날이 갈수록 풍성하여지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풍부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 이는 본인의 체험 가운데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필요 없다. 당신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당신은 은혜 받은 초기부터 [밤이 있고] (어렵고 고난 환경), [아침이 있다](즐겁고 상쾌한 환경)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몇 달이 지났는데도 당신에게 여전히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 회개하면서 [주님! 당신께서 저를 완전히 버리셨습니까?] 라고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당신에게 많은 [밤]들을 주게 될 것이다. 밤이 다가올 때 마다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흐르게 하며, 마음도 아프게 하지만 그러나 당신은 더 높은 하늘을 만지게 되고, 더 많은 풍성도 보게 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두운 밤의 단계를 거쳐 나아갈 때 마다 우리의 하늘은 갈수록 높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1: 9~ 11, 13 ).

우리가 부단히 성장하면 우리의 마음은 주님에 의해 얻게 되므로 그분으로 하여금 하나의 땅을 얻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으로부터 우리의 마음 가운데로 확충할 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들은 함께 모여서 좋은 기도와 아름다운 교통을 한 후, 집회가 끝나자마자 우리의 마음은 다른 데로 빠져나간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비춤과 공급은 우리 마음속에 조금도 남지 않게 된다. 이것은 우리 안에 아직 주님으로 하여금 확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땅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체들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땅이 없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주님 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아무 일을 할 수 없고, 또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전혀 쓸모없게 된다. 그 사람이 여러해  입은 은혜의 결과는 이 정도에서 끝을 맞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영안에 살지 않는다고 말 할지 모르나 그러나 그 사람은 날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영적인 말도 아주 요령 있게 한다. 그 사람은 요령을 잘 알아, 사람들에게 그렇듯 하게 보이게 할지 몰라도 그러나 그 사람이 영적인 사무를 [다루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는 우리에게 아직도 땅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이다. 착실치 않은 우리는 하나님 집의 놀이꾼 또는 고용인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을 주님께서 더 초월한 경지로 인도하실 수 없을 것이다.

해와 달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1: 15~ 19 ).

햇빛에 대한 다스림이 적용의 체험을 가져옴

땅이 있어도 부족하다. 넷째 날의 체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땅에서는 식물 들을 자라게 하지만 그러나 식물은 지각(知覺)이 없다. 단지 생명만 있을 뿐이고 감각이 없다. 만일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견고하고, 가치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이끌려 넷째 날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넷째 날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적용이다. 처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교회도 언급하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애매모호하였을 것이다. 그런즉 하나님이 오셔서 건축하고자 하신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당신이 [그리스도가 있도다! 교회가 있도다! ]는 말을 한다고 해서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당신이 그분의 다스림을 받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당신은 성장할수록 주님을 더욱 만지게 되고, 당신은 성장 할수록 더욱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점차적으로 당신의 성장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당신 안에서 주님의 풍성한 적용이 있을 것이다. 이때에, 주님은 다만 당신의 말 가운데서 [주님은 얼마나 좋고, 나는 그분을 얼마나 사랑한다.] 뿐만 아닌 당신 안에 확실한 해가 있는 고로 진지하게 당신이란 사람을 다스릴 것이다. 당신을 다스리는 이 광선을 만지면 만지게 되고 ,누리면 누릴 수 있으며, 수시로 당신으로 하여금 빛 비춤을 받게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각 부분을 빛 비추신다. 당신이 행동하면 그분의 빛이 그 곳에 있을 것이고, 당신이 앞으로 나갈 때에 그분의 빛이 그 곳에 있을 것이고, 당신이 후퇴 할 때에도 그분의 빛도 그 곳에 있을 것이다. 당신의 주위에는 무언가가 당신을 포위하여 당신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떠날 수 도 없게 한다. 당신은 오로지 무릎을 꿇고 [주님!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라고  고해야 할 것이다.

빛 비췸이 있다고 해서 당신은 [할렐루야! 예수는 해이시오, 정말 좋군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 예수께서는 해이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빛이 비췰 때마다 다스림이 온다는 것이다. 당신이 해의 실체를 만진바가 있는가는 당신의 다스림의 만진 바에 근거한다. 다스림이 많을수록 빛이 더욱 강하다. 만일 당신에게 빛의 다스림이 적다면 이는 당신이 주님 안에서의 깊은 체험이 적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전 사흘은 오직 기초 밖에 삼을 수 없고, 넷째 날이올 때만이 비로소 적용의 체험이 있게 되고,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 수 있다. 이전 사흘의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만져 채소를 자라나게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 구원을 얻게 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확실치 않다. 어떻게 하면 더 확실히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어느 날 주님 앞에 무언가를 만지게 되고, 사람인 우리를 변하게 하여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그분의 얼굴을 피할 수 없고, 그분의 포위 가운데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여기 있을 때 그분도 이곳에 있고, 내가 그 쪽에 있을 때 그분께서도 그 곳에 계신다. 내가 어느 곳에 가던 간에 그분의 다스림의 손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창세기 1장은 바로 하나님의 중심 사역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생명이 성장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진지하게 다스리신다. 그분의 다스림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이때에 우리는 비로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네] 당신과 주님이 하나가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의 영은 풍성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바가 많게 되며 하나님 얼굴 빛 가운데서 진지한 사람으로서 [오! 주여! 영광스러운 주님! 나와 놀라운 하나가 되었도다!] 라는 간증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여 어두움 밤을 통과케한  달빛과 별빛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하늘의 색깔은 결코 날마다 푸르지 않다.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는 흔히 어렵고, 험난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즉 우리에게 부축과 위안이 되는 달(교회)이 있는 것이다. 달 이외도 또한 별(성도)들이 있다.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이 당신의 도움인가?  해가 아니라 달인 것이다.  밤에 당신은 달을 찾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경지에 이를 때 무거운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는가? 당신이 어느 경지에 들어설 때에 주님이 당신을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것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이때에 달이 해보다 더 보배롭다. 우리 모두가 이때에 달의 다스림(공급뿐만 아닌 다스림이다)과 교회의 다스림 아래에 생활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 앞에 열번 나가게 되면 ,교회에 나오는 것도 이와 비슷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하루 24시간에 해만 있고 달이 없으면 안 된다. 당신은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 앞에서의 나의 어떠함이 곧 교회 안에서의 나의 어떠함이요, 주님이 나를 다스리는 것처럼 교회도 나를 다스린다. 주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심과 같이 교회 또한 나의 주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과 교회는 상충하지 않는다. 달의 빛은 바로 해의 빛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회의 나타남은 바로주님 자신이다. 당신은 교회 안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교회 안에서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다. 교회 안에 적게 머무는 사람은 축복도 적다. 우리의 영적 생명의 성장에 있어서 주님의 빛이 적어서도 안 되고, 교회의 빛이 결여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가 없으면 정상적인 성장은 없다. 교회가 없으면 생명의 성장의 결국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교회는 우리에게 제일 좋은 보호이다. 화창한 날씨와 궂은 날씨가 있듯이 교회생활이 좋던 나쁘던 간에 그 안에서 생활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교회는 당신에게 영원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와 달이 동시에 넷째 날에 나온 것은 양자(兩者)가 우리 생명의 성장에 대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합당하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단순하게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교회는 우리에게 항상 도움이 되는데, 특히 우리가 심히 연약할 때에 우리에게 너무나도 실제가 된다.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어두운 밤을 통과케 하는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이 밖에 많은 별들, 많은 성도들이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길 [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 41 )  생명의 노정에서 여러 성도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한 사람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면 다름 아닌 당신에게 심한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다. 교회 안에서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당신을 도와주지 못할 수 도 있다)  만일 당신이 교회와 문제가 발생할 때 분명히 당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형제자매와 문제를 일으킬 때 분명히 이것도 당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쪼록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마치 해가 나의 보호인 것처럼 달과 많은 별들도 나의 보호입니다.

물고기와 새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1: 20~21, 23 ) 이때가 되니, 물고기와 새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물고기는 사망을 이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새는 하늘에 속한 초월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님은 당신과 함께 계시며, 또한 당신은 교회 안에 살고 있기에 사망은 결코 당신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망에 관한 말이 있고, 많은 사망에 관한 일들이 있으며 ,또한 사람들을 사망케 하는 환경들이 있다. 심지어는 많은 침체된 집회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은 승리 할 수 있다. 당신은 사망을 넘길 수 있다 . 당신이 봉사해야 할 때 봉사를 하고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며, 공급해야 할 때 공급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망 환경가운데 있더라도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하며, 신선하게 당신의 주님을 흘러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 당신 안에 생명의 성장은 사망이 당신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당신은 새처럼 초월해야 하고 ,하늘의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에겐 생명의 초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생활에서 당신은 주님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끝임 없는 많은 일들이 당신을 가라앉게 하고, 상심 하게 하고, 연약하게 한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당신은 여전히 일어나서 이렇게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의주님 여기에 계시네! 나의 체험한 바 주님 풍성하시네! 소망인 교회 나는 알았네!] 당신이 선포할 때 어려운 환경을 초월할 것이며, 아주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강하다. 그렇지만 여기는 바다와 하늘이지 아직 땅에는 이르지 못했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는 것은 땅이다.

육축과 사람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 25~27).

이 단계에 들어선 그리스도인은 그야말로 진실로 영안에 사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땅에서 걷고 있지만, 땅은 그를 결코 제압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이 많은 일을 하지만 그러나 그가 흘러 나타나게 한 것은 오직 주님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게 한 것도 주님 자신뿐이다. 그에겐 특출한 것이 전혀 없고 ,영적인 자랑도 없으며, 그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생명을 흘러나오게 한다. 땅은 그를 다시 묶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공부하는 것처럼 그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이 일을 하는 것처럼 그도 일을 하고 ,그는 땅에 있지만 그러나 땅에 속하지 않는다.  그의 땅에서의 행동과 생활은 아주 자유스럽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마지막에 한 단체적인 사람을 얻게 되시고 ,이 땅 위에의 땅을 다스리게 한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성장을 통하여 하나의 건축된 교회가 나타나게 된다. 생명의 성장이 교회에서 나타낸 상태는 이 땅 위에서 왕 노릇하게 한다. 진정한 복음은 사람들이 어떻게 전파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 : 14 )와 같은 원칙이라야 한다. 복음은 빛과 같아야 하고, 또한 산 위에 있는 동네와 같아야 하며, 누구나 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전파 하건 하지 않던 간에 누구나 다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얻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얻고자 하신 하나의 단체적인 사람을 통하여 이 땅을 다스리고자 하신다. 비록 사탄은 이 땅의 주인이지만 (초기 사탄이 배역한 후 땅을 찬탈하고 땅의 주인이 됨), 그러나 하나님께서 얻으신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사탄을 다스리고, 이 땅도 다스린다. 이것이 생명 성장의 목적이다. 생명 성장의 목적은 마지막으로 우리가운데 이루어 질 것이다.

이 외에도  6일의 성장 과정 중에 우리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의 원칙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저녁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침이 온다는 것이다. 기묘한 것은 하나님께서 매번 우리를 이끌어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실 때마다  먼저 우리들에게 하나의 길고 긴 어두운 밤을 체험케 하신다는 것이다. 이 어두운 밤이 길면 길수록 아침의 체험이 더욱 풍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이 항상 푸르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한 곳에 멈추게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더 깊은 체험을 있게 하시고 ,더 많은 생명의 성장을 있게 하신다. 그러나 무엇을 통해  하시는가?  추구나 집회 또는 영적 생활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난에 처하고 ,어두운 밤을 지냄을 통하여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결코 우리를 평탄함과 순조로움에 두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여러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하므로  생명의 성장이 있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장 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를 반복 언급한 이유이다. 모든 저녁은 오는 아침을 위해서 있고, 모든 아침은 우리를 이끌어 또 다른 저녁을 통과케 한다. 이 얼마나 좋은가! 우리의 일생  생명의 성장은 실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또한 하나님께 근거한다. 그분께서 시작하고 일을 하셨으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그분은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우리들이 그분의 뜻을 이룰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분을 찬양하자!

우리는 이러한 말들을 도리로 삼지 말자.  만일 그럴 경우   이러한 말들이 무미건조하고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진실하게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 주여! 나는 성장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  나는 생명 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해의 빛이 몸에 쬐고 ,달이 다스림이 되며, 많은 별들이 나의교통이 될 정도로 성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사망마저도 우리를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이 필요하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사탄을 정복하고 ,이 땅을 다스릴 정도로 성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얼마나 변했는가?  빛은 나왔는가?  해와 달은 나왔는가?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짐승은 나왔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는 교회의 지체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하나의 단체적인 사람을 나타낼  정도로 성장이 되었는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성장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각 곳에서 기묘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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